[말빛 발견] 오해에서 비롯된 김치, 길쌈, 깃/이경우 어문팀장

[말빛 발견] 오해에서 비롯된 김치, 길쌈, 깃/이경우 어문팀장

이경우 기자
입력 2017-01-11 23:08
수정 2017-01-1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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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딤채>짐채>짐치>김치’ 정도의 변화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딤’이 ‘짐’으로 바뀐 건 순전히 발음의 편리 때문이다. ‘ㅈ’은 입천장 앞쪽의 단단한 부분에서 소리가 난다. 더 정확히는 혓바닥과 입천장 앞쪽의 경구개(硬口蓋) 사이에서 나는 소리다. 그런데 모음 ‘ㅣ’도 ‘ㅈ’ 가까이 경구개에서 소리 난다. 같은 경구개에서 소리 내는 게 편하다 보니 ‘딤’이 ‘짐’으로 변하게 됐다.

이런 환경에서 ‘ㄷ’이 ‘ㅈ’으로 바뀌는 현상을 구개음화라고 부른다. 즉 구개음이 아닌 소리가 구개음으로 바뀌는 것이다. ‘ㅈ’ 외에 ‘ㅉ’, ‘ㅊ’도 구개음이다. ‘굳이’는 [구지], ‘같이’는 [가치]로 구개음화돼 소리 난다.

한데 ‘짐치’가 ‘김치’로 된 건 의외의 현상이다. 발음이 더 편한 것도 아니고, 언어 내적으로 바뀔 만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바뀌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다니는 ‘길’(路)을 ‘질’로, ‘기름’을 ‘지름’이라고 말하는 예가 있다. 구개음화해 발음하는 것이다. 그래도 ‘길’과 ‘기름’을 그렇게 소리 내는 것으로 알고 이해한다. ‘짐치’도 ‘길’과 ‘기름’처럼 받아들인 것이다. ‘김치’가 본래의 말이라고 여겨 ‘김치’라는 형태로 변형시키고 말았다.

새의 깃털 ‘깃’(羽), 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 ‘키’(舵), 실을 내어 옷감을 짜는 ‘길쌈’ 같은 말들도 본래는 ‘짓’, ‘치’, ‘질쌈’이었다. 모두 구개음화한 방언으로 오해해 현재의 형태로 바꾸게 됐다. 구개음화 현상이 낳은 해프닝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2017-01-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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