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가마솥 백숙/문소영 논설위원

[길섶에서] 가마솥 백숙/문소영 논설위원

입력 2014-09-16 00:00
수정 2014-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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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골 잔칫날에 찍은 흑백 사진에서 가설(假設) 아궁이에 무쇠솥을 걸어놓고 흰 김이 펄펄 나는 고깃국을 끓이는 모습이 왠지 정겨웠다. 대학 1학년 때 도서관에서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쌓아두고 읽을 때는 추위와 피로에 지친 장돌뱅이가 가마솥에서 퍼올린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로 몸을 푸는 장면에서 늘 그 낡은 흑백 사진을 떠올리곤 했다. 소도시 출신이라 경험하지 못했던 때문에 그 가짜 기억을 추억처럼 간직했다.

지난 주말 퇴직한 회사 선배의 초청으로 농막에서 몇몇이 술추렴을 했다. 제일 흥미진진했던 시간은 흙과 벽돌로 어설프게 지은 아궁이에 가마솥보다 조금 작은 솥을 올리고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토종닭을 고아 먹은 것이다. 황기 등 한약재와 뽕잎 가루가 들어가 잡내가 나지 않는 토종닭 백숙은 쫄깃한 식감이 최고였다. 흑백사진으로 채운 가짜 기억을 대체할 매운 연기와 뜨거운 불기운을 생생하게 체험했다. 촉 낮은 전구 아래 기념사진도 찍었다. 인생의 가치는 생산성·효율성에 있지 않고 좋은 사람과 질긴 인연을 만들어 세월이 훼손할 수 없는 또렷한 추억을 쌓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2014-09-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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