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시제(時祭)의 추억/박건승 논설위원

[길섶에서] 시제(時祭)의 추억/박건승 논설위원

박건승 기자
입력 2016-12-12 20:50
수정 2016-12-12 20:55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겨울의 길목에서 만나는 어슴푸레한 기억이 있다. 낙엽 진 산야와 가을걷이 끝난 황량한 들판, 거기에 눈발 흩날리는 스산함까지 포개져 떠오르는 늦가을의 시제(時祭). 익숙하면서도 낯선 살풍경이랄까. 그 옛날 시젯날 날씨는 왜 그리 섬닷했던지.

지게에 제수음식 가득 짊어진 집안 형님·아저씨의 꽁무니를 따라 산속을 헤집으면서도 즐겁기만 했던 만추의 산행. 시루떡, 가래떡에 곶감, 돼지고기, 산적, 그리고 산골 아이에겐 평소 구경조차 힘들었을 바닷고기들…. 제상엔 무슨 음식이 그렇게 많이 올라와 있던지. 그런 제물에 장난꾸러기들은 눈을 못 떼고, 묘제 끝나면 인원수대로 나눈 음식을 책보에 싸 들고 왔던 추억. 해 질 녘 찬바람에 볼이 빨개져 와도 또래들과 장난질 궁리에 여념이 없던 하산길. 가슴 저리는 그리움이다.

지방에 사는 당질과 간만에 통화하다 요즘 시제 모시기의 어려움을 듣는다. 저승으로 떠나고 객지로 떠나고…. 시제 음식 장만할 이도, 시제 모실 이도 없다는 팍팍함. 고향을 떠나온 지 40년이 다 되도록 시제에 한번 참석 못한 나는? 나이 듦엔 어릴 제 회상 속에 사는가.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에 있을까.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2016-12-13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가수 유승준의 한국비자발급 허용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가수 유승준이 한국 입국비자 발급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세 번째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다만 이전처럼 주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관이 법원 판단을 따르지 않고 비자 발급을 거부할 경우 한국 입국은 여전히 어려울 수 있다. 유승준의 한국입국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1. 허용해선 안된다
2. 이젠 허용해도 된다
3. 관심없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