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순환출자 해소, 국민경제에 도움되나

재벌 순환출자 해소, 국민경제에 도움되나

입력 2012-07-23 00:00
수정 2012-07-23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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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적은 돈으로 재벌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정치인들은 여야 관계없이 재벌 총수가 계열사 자금을 통해 과도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순환출자 구조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민주통합당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놨다.

순환출자를 없애면 기업 재무구조가 투명하고 탄탄해진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고용이나 투자를 가로막아 오히려 국민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반박도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삼성 4조3천억으로 지배구조 개편 가능

23일 재벌닷컴은 삼성그룹이 현재 순환출자를 단순 해소하는 데 4조3천290억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현재 환상형 순환출자로 연결된 계열사 중 한 곳을 선택해 대주주나 해당 계열사가 연결 지분을 사들이는 데 드는 최소 비용이다. 비상장사는 작년 말 장부가치, 상장사는 이달 2일 종가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환상형 순환출자는 대기업 집단 소속 계열사들의 출자 흐름이 동그랗게 연결되는 것을 말한다.

삼성은 핵심 기업인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끊으려면 단순 해소 때보다 많은 7조8천57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게 하면 총수의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건희 회장과 그의 친인척들이 7천656억원만 부담하면 경영권을 유지하면서 삼성의 순환출자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증권가에서는 한 때 삼성이 지배구조를 바꾸려면 15조원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관측을 제기했다. 이런 막대한 규모의 예상치는 현재 순환출자 구조에 섣불리 손댈 수 없다는 근거로 활용됐다.

그러나 정선섭 재벌닷컴 대표는 “순환출자를 점진적으로 해소한다고 전제하면 각 대기업 집단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금액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재벌닷컴은 이 밖에도 삼성, 현대차, 롯데, 현대중공업, 한진, 한화 등 6개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를 단순히 끊는 데는 14조6천440억원, 핵심 기업을 지주회사로 삼을 수 있도록 출자 구조를 변경하는 데는 27조6천410억원이 각각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했다.

◇여야 재벌 지배구조 개선 필요성에 공감

재벌의 순환출자 구조 문제는 정치권의 핫이슈다.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달 10일 대권도전을 선언하면서 재벌의 순환출자를 신규분에 한해 금지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자기가 투자한 것 이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순환출자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박 전 위원장이 이런 견해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새누리당 안에서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돼 왔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벌 개혁을 위해 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를 전면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규분에 한해 금지하는 것은 재벌에 면죄부를 주고 면피하는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민주통합당은 앞으로 새로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순환출자 구조인 기존 대기업 집단도 3년의 유예기간 동안 순환출자를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저서 ‘안철수의 생각-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순환출자를 없애는 방향이 맞고 유예기간을 주되 단호하게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새누리당 이혜훈 최고위원과 나성린 정책위 부의장, 민주통합당 이상직 의원과 김기식 의원 등이 당론과 일맥상통하는 재벌 지배구조 개선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정치권에서 순환출자 관련 논의를 하는 데 사실상 밑거름을 제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달 1일 국내 대기업 집단 63곳의 주식소유현황 분석자료를 내놨다. 특히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대기업 집단이 15곳에 달하고, 이들 모두 총수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경제민주화 논의가 한창인 와중에 순환출자 금지는 ▲출자총액제한제 부활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근절 ▲편법적 상속·승계 금지 등과 함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주식회사 근간 흔든다” vs “주식회사 특징이다”

일각에서는 재벌의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가 주식회사 제도를 뿌리부터 흔든다고 지적한다.

김우찬 경제개혁연구소장은 “순환출자는 상법상 자본충실의 원칙에 어긋난다. 순환출자로 대기업 집단을 유지하는 것은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순환출자를 하다 보면 장부에만 올라있고 실제로는 없는 자산, 즉 가공자산이 발생한다. 이 가공자산 탓에 한 계열사가 부실해지면 그 회사 출자한 다른 계열사도 동시에 재무상황이 나빠져 연쇄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

정선섭 대표는 “외환위기 당시 재계 서열 2위였던 대우그룹이 무너진 것은 순환출자로 만들어진 가공자산이 빚 부담을 가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자본충실의 원칙은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주식회사가 법정 자본액에 상당하는 재산을 실제 보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상법상 여러 조항을 통해 규정돼 있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채권분석팀장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면 경영 투명성이 강해지고 재무구조가 좋아진다. 가공자산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순환출자 해소에 드는 돈을 막연히 비용 부담으로만 볼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순환출자가 경제적 효과 측면에서 공정거래법이 금지한 직접 상호출자와 사실상 같다는 지적도 있다. 순환출자를 상호출자 금지로 생겨난 일종의 편법으로 보는 시각이다. 재벌들은 대부분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다.

반면에 재계는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이 국민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순환출자는 기업들이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인수합병을 하거나 기존 생산라인을 확장해 수직계열화를 꾀할 때 나타난다”며 “이를 막으면 새로운 투자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 본부장은 “그룹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여러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주식회사 제도의 특징”이라며 “총수의 영향력은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바뀌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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