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표 뽑는 유일한 직접선거, 토론회·운동 없이 조용히 치러
지난 15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선거가 치러졌다. 시내 각 구(區), 향(鄕), 진(鎭)의 인민대표대회(인대) 대표를 뽑는 선거였다. 한국으로 치면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인데, 중국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직접선거다.이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도부 집단 거주지인 중난하이(中南海) 선거구 화이런탕(懷仁堂)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장쩌민(江澤民)·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도 화이런탕에서 투표를 했는데, 본인들이 직접 오지 않고 대리인을 시켰다. 중국에선 위임장을 통한 ‘대리투표’가 가능하다.
중국 언론은 전·현직 지도부의 투표 사실과 시 주석의 “구, 향, 진급 선거는 인민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정치적 행사”라는 발언만 보도할 뿐 투표 관련 다른 소식은 전혀 알리지 않았다. 선거 기간에도 토론회나 선거운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조용한 선거’였다.
‘조용한 선거’의 이면에는 감시, 감금, 체포가 횡행했다. 인대 선거 규정에는 당의 추천을 받거나 주민 10명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인민 후보로 나설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당국은 ‘독립후보’를 반체제 세력으로 간주하고 감시해 왔다.
동네 불법 주차와 애완견 배설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자 출마한 후보는 주민에게 자신의 공약을 알리다가 적발돼 강제 여행을 떠나야 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독립후보 18명은 베이징시 인대를 방문해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려고 했으나 경찰에 막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16일 선거가 치러진 상하이에 독자 출마한 후보들은 공약집을 배포하다가 체포됐다. 은행원 출신의 한 독립후보는 “홍보용 ‘짝퉁 선거’”라고 비판했다.
올해 말까지 중국 전역에서는 250만명이 기초 인대의 대표로 뽑힐 예정이다. 유권자는 9억명에 이른다. 유권자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뽑고, 당선자는 왜 당선됐는지 모른다. 중국의 기명식 투표용지에는 출마하지 않은 사람의 이름도 적어 넣을 수 있는 공란이 있다. 이 공란을 가장 많이 채우는 문구가 ‘장엄한 한 표’(莊嚴一票)라고 한다. 투표용지 상단에 적힌 구호인 ‘민주권리를 소중하게 여기자. 장엄한 한 표를 행사하자’에서 ‘장엄한 한 표’라는 문구를 장난삼아 적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짝퉁 선거’에 대한 조롱이자 ‘진짜 선거’에 대한 갈망이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2016-11-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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