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과이에 선보인 ‘인사하는 거인’상, 브라질 등에도 진출
“외국에서는 인사할 때 머리를 숙이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리팅맨 앞에선 다들 자연스럽게 고개를 꾸벅하더라고요. 남미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한국식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높이 6m에 달하는 ‘인사하는 거인’ 조각상이 내년 남미 3개국에 상륙한다.
주인공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남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리팅맨’(Greetingman).
그리팅맨 1호는 2012년 10월 부산항을 출발, 태평양을 건너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첫발을 디뎠다. 이어 3·4·5호가 내년 7월께 브라질, 콜롬비아, 파나마에 차례로 진출한다.
왜 남미일까.
조각가 유영호(50) 씨는 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거창한 이유는 없다”며 웃어 보였다.
”지구본에서 한국과 정반대 쪽에 있는 나라를 찾다보니 우루과이였죠. 한국식으로 인사하는 모습을 어디서부터 보여주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몬테비데오에 등장한 그리팅맨은 단숨에 현지 명물이 됐다. 벌거벗은 거인이 차렷 자세로 공손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 현지 주민은 유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내 “처음 그리팅맨을 봤을 땐 놀랐지만 요즘은 주위를 지나갈 때마다 왠지 모를 따스한 느낌을 받는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정작 작가가 의도한 건 뭘까.
유 작가는 “상대방을 향해 몸을 굽힌다는 건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는 겸손함의 표현”이라며 “점점 도구의 시대가 끝나고 공존이 필요한 시대가 오는 만큼 한국식 인사로 소통과 대화를 시작하자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온 그는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유학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2004년 김세중 청년 조각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특히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의 공적 역할을 최대화하는 데 관심이 많다.
국내에도 파주 헤이리 등지에 유 작가가 만든 소형 그리팅맨이 서 있다. 하지만 이는 세계 곳곳에 대형 조각상을 세우는 ‘그리팅맨 프로젝트’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판매를 생각하고 만든 작품이 아닙니다. 그동안 모은 사비와 후원금으로 제작비를 댔죠. 크기도 수출용 컨테이너에 딱 맞도록 처음부터 6m로 통일했어요. 비상업적인 글로벌 프로젝트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팅맨을 푸른색으로 칠한 것도 이유가 있다. 흰색이나 살구색은 자칫 특정 인종을 선호한다는 편견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팅맨 2호는 지난해 강원도 양구에 등장했다. 비무장지대(DMZ) 옆에서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겠다는 취지다.
잠시 숨을 고른 그리팅맨 프로젝트는 내년에 남미 상륙을 본격화한다. 브라질 헤시피, 콜롬비아 토칸시파, 파나마 파나마시티의 공원과 항구에 3·4·5호가 들어선다.
유 작가는 그리팅맨이 남미에 한국을 더 많이 알리고 교류를 넓혀 한인 동포 사회에도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는 “남미에는 K팝 덕택에 한류 돌풍이 불고 있지만 그에 비해 경제·사회적 교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면서 “그리팅맨이 현지 관광 책자나 페이스북에도 자주 등장하는 만큼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오작교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유 작가는 그리팅맨을 베트남과 일본 후쿠시마 등지에도 세우는 날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전쟁이나 지진으로 상처를 입은 지구촌 곳곳에 그리팅맨을 세워 인류가 스스로 제 모습을 겸허히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한다”며 “내후년까지 그리팅맨을 10호 이상 배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전 세계 20∼30개 지역으로 퍼뜨리는 게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 작가는 이어 “그리팅맨은 순도 99%에 달하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환경 훼손 우려도 적을 것”이라며 “겉모습은 투박해도 속내는 따스한 한국인과 비슷하다”고 소개했다. 그리팅맨의 얼굴에 담긴 미소와 어쩐지 닮아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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