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한도끝도 없다”…이매방의 80년 전통춤 외길인생

“예술은 한도끝도 없다”…이매방의 80년 전통춤 외길인생

입력 2015-08-07 11:37
수정 2015-08-0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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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목포권번 춤 무대예술로 승화…지난해에도 무대 올라 집념의 예술혼 보여줘

“예술은 길고 척도는 없고 한도 끝도 없어요. 가락 하나하나에 전부 혼을 넣은 춤을 춰야 합니다.”

7일 별세한 우봉 (宇峰) 이매방 명인은 80년 전통춤 외길을 걸어온 ‘한국 춤의 거목’이었다.

생존 예술가 중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1987년)와 제97호 살풀이춤(1990년) 등 두 분야의 예능보유자였다. 호남 춤을 통합해 무대양식화한 ‘호남춤의 명인’으로도 불린다.

본명은 이규태로, 1927년 전남 목포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옆집에 살던 목포 권번(기생들의 조합) 장의 권유로 사내아이로는 드물게 7세에 권번학교에 들어가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목포 북교국민학교와 목포공고 재학 시절 이대조 선생에게서 승무를, 박용구 선생에게서 승무북을, 이창조 선생에게서 검무를 배워 춤의 기본기를 익혔다.

초등학교 때 5년간 중국에 살면서 전설적 중국 무용가인 매난방에게서 칼춤과 등불춤을 배웠다.

열다섯 살 때 우연히 판소리 명창 임방울의 공연에서 승무를 추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승무와 살풀이춤을 비롯해 입춤, 검무, 장검무, 장고춤, 사풍정감, 초립동, 승천무, 대감놀이, 기원무, 보렴무, 고무, 소고춤, 사랑가, 화랑도, 한량무, 신선무, 춘향전 등 19종의 춤을 췄다.

특히 그의 승무는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호남형 승무’로 고고하고 단아한 정중동의 춤사위로 인간의 희열과 인욕(忍辱)의 세계를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프랑스 아비뇽 문화제 한국축제에서 선보인 그의 승무에 대해 프랑스 르몽드지는 “온몸에 축적된 에너지가 춤을 통해 손 주위로 번지고 북채를 통해 밤으로 퍼지는 음악이 되고 있다”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그의 살풀이춤은 한과 신명을 동시에 지닌 춤으로 정적미의 단아한 멋과 정과 한이 서린 비장미를 함께 갖추고 있다.

1960년대 삼고무, 오고무, 칠고무 등 일종의 북춤인 고무(鼓舞)를 비롯해 검무, 기원무, 초립동 등을 직접 창안해 그만의 춤세계를 구축하기도 했으며, 200여명의 제자를 길러냈다.

이 명인은 생전 다시 태어나도 남자로 태어나 춤추는 인생을 살겠다고 말하면서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무대에 서는 등 마지막까지 예혼과 열정을 놓지 않았다.

그는 평소 손수 재봉질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춤사위와 음악은 물론 의상도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으로 의상과 소품까지 직접 챙겼고, 제자들의 의상까지 직접 만들어줄만큼 열의가 넘쳤다.

지난해 8월에는 87세의 나이로 제자들이 연 ‘우봉 이매방 전통춤 공연’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호남 기방예술의 정통계보를 잇는 ‘입춤’을 추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도 공연이 예정돼 있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는 “이매방 명인은 교방춤을 무대로 승화시켜 전통무용의 패러다임을 바꾼 춤의 천재로, 광복 이후 전통무용은 이매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며 “전통춤의 원형을 간직한 이 명인의 타계는 한국춤의 한 시대가 진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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