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談餘談] 시스터후드/유지혜 정치부 기자

[女談餘談] 시스터후드/유지혜 정치부 기자

입력 2010-04-24 00:00
수정 2010-04-2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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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정치부 기자
유지혜 정치부 기자
고등학생 시절 ‘정치적으로 올바른 베드타임 스토리’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널리 알려진 옛날이야기들 속에 숨어 있는 차별적 시각과 편견을 찾아내고, 상상력을 발휘해 말 그대로 ‘올바르게’ 고쳐쓴 책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동화는 ‘백설공주’였다. 이야기 속 못된 왕비는 남성 중심의 계층 지배적 사회체제 속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자신의 가치를 확신하지 못한 채 외모로만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 불쌍한 여성이다.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잠든 백설공주는 이웃나라 왕자가 자신에게 키스하려는 순간 깨어나 “정신 잃은 여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고 따진다. 한바탕 소동을 지켜본 왕비는 여성의 육체에 집착하는 남성적인 사고방식에 질렸다면서 백설공주와 함께 여권운동가로 나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극단적으로 표현됐지만, 이야기 속 왕비와 공주의 경쟁은 현실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실제로도 그렇고, 그럴 것이라는 인식은 더 심하다. 때문에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말이 나오고, 다른 여성에 대한 비판은 쉽게 질투와 시기로 폄하되곤 한다.

최근 만난 ‘중량급’ 여성 정치인은 성공한 여성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시스터후드(sisterhood)’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굳이 ‘동지애’가 아니라 ‘자매애’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남성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차라리 쉽다. 하지만 같은 여성들에게서 신뢰받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굵직굵직한 광역단체장 후보로 유독 여성들이 많이 부각되고 있다. 앞으로 엄격한 검증과 치열한 경쟁이 진행되겠지만, 솔직히 같은 여성으로서 기분좋은 일이다. 그리고 난 이들이 어떻게 시스터후드를 만들어갈지 주목한다. 여성이니 여성후보를 찍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같은 여성이라 더 큰 기대를 하고, 매서운 눈으로 지켜볼 여성 유권자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인정받으란 뜻이다. “콘텐츠가 부족해서 안 되겠다.”는 비판은 들을 지언정 “어차피 얼굴 마담 아니야?”라는 비아냥은 듣지 않길 바란다. 왕비와 백설공주도 연대할 수 있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말을 기대한다.

wisepen@seoul.co.kr
2010-04-24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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