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미현 경제부 전문기자
이명박 정부의 핵심 실세였던 백용호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쓴 ‘반전’의 한 대목이다. 그렇게 묶여 있던 DTI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면서 단박에 풀렸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라면 몰라도 DTI까지 손대기는 힘들 것이라던 일각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LTV·DTI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많다. 담보가치(집)를 얼마나 쳐줄지, 개개인의 빚 갚을 능력을 얼마로 측정해 얼마나 빌려줄지는 금융사가 판단할 몫이라는 논리에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금융사들에 그런 위험분석과 심사능력이 충분히 있던가. 아니, 그 이전에 그런 능력을 키우도록 충분히 자율을 줬던가. 다행히 실력을 갖췄다고 할지라도 주택담보대출이라는 떼일 확률 낮고 이자 확실한 먹거리를 눈앞에 두고 과식의 덫에 빠지지 않을 만큼 우리 금융사들은 절제돼 있는가.
가계는 또 어떤가. 소득이 오르지 않으니 생활비는 늘 적자이고, 직장에서 떠밀려 나와 작은 가게라도 차리려는 데 목돈은 없다. 그럴 때 가장 쉽게 ‘잡히는’ 게 집이다. 그 집을 장만하느라 진 빚도 채 갚지 못했는데 어쩔 수 없이 또 빚을 진다. 빚으로 빚을 갚는 돌려막기 인생이다. 개인이든 금융사든 호된 시련(외환위기, 금융위기)을 두 번이나 겪었으니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돈을 쉽게 빌려주겠다고 끊임없이 유혹하면서 ‘의리’를 기대하고 주문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주가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며 여기저기서 ‘최경환 효과’를 얘기한다. 요즘 최 부총리는 입이 귀에 걸렸을 듯싶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중에 날아들지도 모를 청구서 걱정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못내 아쉬운 것은 그래서다.
경제는 심리이니 모든 부처가 하나 되어 뛰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체를 조망한 뒤의 합심이어야 한다.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면밀히 염두에 둬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책 공조요, 팀워크다. 경제부총리를 부활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은 총재는 “금리는 내리더라도 가계 빚이 걱정되니 DTI는 풀지 않아야 한다”고 좀 더 강하게 주장해야 했다. 신 위원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총재는 엉거주춤이요, 신 위원장은 180도 돌변이다. 금융감독원은 한 술 더 떠 은행더러 왜 일괄 대출잣대를 적용하지 않느냐고 채근이다. DTI는 시작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대통령 앞에서 받아쓰기하는 장관들을 보지 않게 된 대신, ‘만사경통’(최 부총리) 앞에서 머리 조아리는 장관들만 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hyun@seoul.co.kr
2014-08-0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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