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빛 발견] 가지런하고 곱다는 말 ‘함초롬하다’

[말빛 발견] 가지런하고 곱다는 말 ‘함초롬하다’

입력 2016-09-21 22:50
수정 2016-09-2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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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물은 소 발자국에 고인 물도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에는 물이 아주 깨끗하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그런가 보다. 평소 더럽게 여기는 소의 발자국에 고인 물조차 먹을 수 있다고 비유한다. 더위가 물러가고 정말 살 것 같아서 그러지 않았을까. 맑고 서늘한 기운이 퍼져서 무엇을 해도 좋은 계절이다. 뿐만 아니라 물빛도 햇빛도 달빛도 더욱 곱게 다가온다. 꽃이나 풀잎들도 색다른 분위기를 낸다. 이럴 때 밋밋한 말이 나올 리 없다. ‘함초롬한 꽃’이라거나 ‘풀잎이 이슬에 함초롬하게 젖어 있다’고 표현하곤 한다.

‘함초롬하다’는 일상에서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곱고 예쁜 느낌을 주지만 말뜻이 선명하게 읽히진 않는다. 글자체 가운데도 ‘함초롬바탕’이나 ‘함초롬돋움’ 같은 것들이 있다. 그저 그런 글자체 이름이 아니었다. ‘함초롬하다’는 ‘젖거나 서려 있는 모습이 가지런하고 곱다’는 말이다. 어감도 뜻도 곱고 예쁘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시인 정지용도 ‘향수’에서 ‘함초롬하다’를 썼다.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에서 보인다. 여기서 ‘함추름’은 ‘함초롬’의 방언이고 부사 형태다. 시인은 ‘함추름’이라는 말을 써서 차분하면서도 곱고 아늑한 풍경을 그렸다.

‘함초롬하다’가 주는 느낌은 가지런하다, 차분하다, 촉촉하다, 곱다 같은 것들이다. 비가 갠 뒤 사물이 그래 보일 때, 어여쁜 상대가 있을 때 쓸 만하다. 세상 풍경이 그럴 때도 있을 것이다.

이경우 어문팀장 wlee@seoul.co.kr
2016-09-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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