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와 역사, 그 지독한 농담

마르크스와 역사, 그 지독한 농담

입력 2011-04-16 00:00
수정 2011-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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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필 작가 ‘이중현실’ 전시회

‘역설’이라 하면 너무 무겁다. 밀란 쿤데라처럼 ‘농담’이라고만 해 두자. 5월 8일까지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열리는 한성필(39) 작가의 ‘이중현실’(Dual Realities) 전시가 딱 그렇다. 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 작품대로 트롱프뢰유(눈속임 회화)를 이용한 사진작품들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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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동상 이전 작업을 기록해둔 영상물이다. 이 동상은 1986년 동독이 건재할 때, 아니 위태롭기 직전 세워졌다. 만든 뜻은 당연히 사회주의 동독을 두 영웅에게 ‘봉헌’하자는 것이었을게다. 그러나 동독은 이내 무너졌고, 동상 또한 철거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역사적 유물’이라는 명분으로 살아남았다. 문제는 다음이다. 베를린 지하철 확장 공사가 진행되면서 위치를 옮겨야 했던 것. 그래서 이전 공사를 했는데, 하필 동독 시절 동쪽을 바라보던 동상이 이번엔 서쪽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틀었다.

한 작가는 이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 두개를 만들었다. 이 작품 제목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Workers of all countries, Unite!’)다. 만국의 노동자 보고 단결하라 했더니, 노동자들이 정말 일치단결해서는 동상을 옮겨버린다. 그것도 서쪽을 보도록. 다른 작품은 ‘운명애’(Amor fati)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 자신을 옮기는 모습을 보고 있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심정은? 아마 운명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배경음악마저 베토벤의 ‘운명’이다.

여기서 끝났다면 ‘2% 부족’했을지 모른다. 눈치라도 챈 듯 작가가 준비해둔 또 하나의 작업은 이 동상을 고스란히 복원해둔 작품이다. 한 작가는 “2차원적인 영상을 3차원적인 실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동상을 배치해 둔 공간이 눈이 시리도록 하얀 곳이다. 백시(白視)를 노린 것. 그러저러하게 역사의 한 단락이 마무리 지어진 백시현상으로 눈앞이 캄캄해진 것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일까, 아니면 그 동상을 봐야 하는 우리 자신들일까. 한 작가가 던져 놓은 지독한 농담이다. (02)723-619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4-16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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