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을 거두고 울타리 친 세상의 정원

여운을 거두고 울타리 친 세상의 정원

입력 2011-09-17 00:00
수정 2011-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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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범 개인전 ‘시크릿 가든’ 11월 2일까지

형태추상이라 했다. “캔버스 위 작업이라는 점에서 평면이지만, 보는 사람은 입체적으로 동영상처럼 봐 줬으면 좋겠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폭포나 산의 이미지를 추상화한 동양화처럼 보인다.”는 평가에 대한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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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시크릿 가든’ 연작 앞에 선 문범 작가. 이번 전시를 통해 좀 더 추상적인 형태에 집중할 생각이다.
자신의 작품 ‘시크릿 가든’ 연작 앞에 선 문범 작가. 이번 전시를 통해 좀 더 추상적인 형태에 집중할 생각이다.


문범(56) 건국대 예술학부 교수가 11월 2일까지 서울 통의동 갤러리시몬에서 개인전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을 연다. 문 교수의 전작들은 흔히 동양화에 비유돼 왔다. 전반적으로 색깔을 절제하는 가운데 오일스틱을 캔버스에 바른 뒤 손으로 문질러 형태를 만들고 끝부분은 희미하도록 사라지게 하면서 여운을 줬다.

덕분에 작품은 묘하고도 신비한 기운이 가득하다. 구름이나 절벽, 폭포라 해도 될 법하다. 절묘한 동양 산수화 같다. 거대한 천체망원경으로 관찰할 수 있는 저 먼 우주의 성운 같기도 하고, 거꾸로 현미경을 들이대야만 볼 수 있는 어떤 물질의 표면 같기도 하다. 역동적인 기(氣)의 움직임 같은 작품도, 작가 스스로 “여자 속옷의 예쁜 레이스”라고 표현할 만큼 감미로운 작품도 있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했다는 점에서 서양화풍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재해석해 내고 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평가도 드높다. “미국 친구들은 미국에서 작업하고 한국에 잠시 다녀오는 줄 알고 있다.”고 농담할 정도로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수차례 전시를 열면서 높은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그런데 4년 만에 열린 이번 전시에서 눈에 띄는 것은 흐려지던 여운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배경은 아크릴 물감을 써서 단색으로 단정하게 정리해 뒀다. 그 위에 오일스틱을 문질러 바른 뒤 손으로 작업한 것까지는 비슷한데, 이것들이 이제 명확한 경계선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전 작품들이 전체적인 그림의 모양새를 보게 한다면, 신작들은 기기묘묘한 형상들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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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집중해서 들여다볼라치면 형상 자체는 더 알아보기 어렵다. 말린 꽃잎이나 나뭇잎 같기도 하고, 형광물질 담긴 휴지 같기도 하면서 먹다 버린 사과 같기도 하다. 잔물결 하나 없는 호수 물 위에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뭔가가 고요하게 부유하고 있는 풍경이다. 문 교수는 “사람에게 무엇으로 인식되는 완벽한 형상을 갖춘 것보다 스치고 지나가듯 익숙지 않고 알 수 없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면서 “세상이란 곳이 눈 부릅뜨고 바라보면 볼수록 오히려 보이지 않는 곳이지 않던가.”라고 반문했다. “우리는 파도 치는 바닷가에서 저 포말을 보라고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고 흘러가는 파도의 모양새에서 포말을 딱 포말이라 부를 수 있던 순간이 있던가.”라고도 했다. 전시 제목 ‘시크릿 가든’도 세상이라는 정원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런 시선을 담았다.

그래서 이번엔 거꾸로 온전한 외곽선을 부여했다. “전작들은 의도적으로 애매한 비주얼을 만들어서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볼 수 있도록 했지만 이젠 그것도 타협적이라고 여겨졌다.”는 설명이다. 구름처럼, 물결처럼, 산봉우리처럼 보여지길 명시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얘기다. 어쩌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이번엔 형태 자체의 독립성을 말하는 것, 그러니까 선을 닫아 걸어 이런 식으로 형태를 만들겠다고 한 것 자체가 개인적으론 가장 큰 결단”이라고 설명하는 이유다. (02)549-3031.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9-1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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