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 68%가 사유림… 산림경영 지원하는 보조금정책 내놔야
“농업에선 내가 키운 채소의 맛을 보며 보람을 느낄 수 있지만 임업의 경우엔 아니야.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죽은 다음에 나와.” 일본 영화 ‘우드잡’(2015)에서는 이런 대사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임업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을 바라보는, 투자 회수 기간이 긴 특징을 지녔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 치산녹화 때부터 지난해까지 나무 111억 그루를 심었다. 전체 산림의 81.7%(505만㏊)가 30~50년생으로 관리만 뒷받침되면 목재 등 자산으로 육성할 수 있다. 특히 산림의 68%(434만㏊)를 차지하는 사유림이 산림경영의 성패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산주 210만명에 3㏊ 미만 소유자가 85%, 관리하지 않고 재산으로만 보유한 ‘부재산주’가 64%나 된다. 하반기 발표되는 ‘한국형 사유림 경영혁신 계획’에는 산주의 경영 참여 및 산림에서의 소득 창출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5일 목표는 같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물 산을 일구는 현장을 찾았다.
전남 순천 백이산 자락의 102농원에 조성된 편백나무 숲길.

102농원에서는 간벌한 편백을 내장재(루바), 베개 등에 사용하는 큐브 가공 작업을 직접 진행한다.
서씨는 매월 3~5회 산에 올라 한 번에 7그루의 나무를 벤다. 혼자서 작업할 수 있는 양이다. 편백은 버릴 게 없고 용도가 다양하다. 잎은 말리거나 오일용으로 판매한다. 씨를 뺀 열매는 베개로 공급하고, 씨는 파종해 묘목을 생산한다. 가지는 내장재인 루바를 만든다. 원목은 판매하지 않고 큐브와 도마 등으로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다. 친환경 어린이용 장난감이나 베개 등에 사용하는 큐브가 주 수입원이다.
시세가 좋더라도 섣불리 생산량을 늘리지 않는다. 직접 판매 대신 고가 제품을 도매상에게 공급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욕심이 결국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서다.
1년에 평균 400그루를 간벌하고 키운 묘목을 재조림하는데,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를 뽐내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조림 시 1㏊(3025평)에 3000그루를 심는데 그는 1만 그루를 밀식 조림한다. 가지와 잎 등을 활용하고 간벌을 통해 생산할 수 있는 공급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성공한 임업인으로 평가받지만 아쉬움도 털어놓는다. 무엇보다 판로 문제를 들었다. 생산자가 아닌 유통업자가 수익을 독점하는 구조를 꼬집는다. 임업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적극적인 지원도 요구했다. 목재를 직접 가공하기 시작하면서 농업용 전기를 신청했지만 임업은 ‘산업’으로 나뉘어 3배 넘게 비싼 일반용을 쓰고 있다.
임목벌채 수령기준(벌기령)을 낮춘 것에 대해 “자원화에 역행하는, 목상만 배불리는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40년생과 50년생의 가격차가 2.5배인데 산주에겐 정보가 없다 보니 ‘감언이설’로 접근하면 설득을 당할 수밖에 없다며 아쉬워했다.
서씨는 “전공이나 직장이 산과 무관했다면 (산림경영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수익을 내는 산림경영이 이뤄지려면 산주가 하고 싶은 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유연한 보조금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기남 서부지방산림청장은 “지원만 받을 게 아니라 스스로 경영책을 마련, 실천하면서 ‘돈버는 임업’을 만들어 냈다”면서 “이처럼 고기 잡는 법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원 홍천군의 북방선도산림경영단지는 지난해 산림청에서 목재 생산을 위해 지정한 경제림 단지다. 1000㏊ 이상 경영 여건을 갖춘 산림을 지정하는데 현재 국유림 6곳과 사유림 8곳이다. 산주로부터 10년간 경영 위탁을 받아 육성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한 혜택을 산주에게 제공하는 방식이다.
권장현 산림청 산림지원과 사무관은 “선도 단지의 경우 당장 목재 생산 등 수익 창출보다 경영 기반 구축을 우선으로 한다”면서 “위탁 경영 후 산주나 지역에서 ‘자력갱생’을 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홍천군 산림조합에서 운영하는 북방단지는 1458㏊로 북방면 성동·북방·화동리에 걸쳐 있다. 산주 80명이 참여했다. 잣으로 유명한 지역답게 잣나무(547㏊)와 참나무(462㏊), 낙엽송(246㏊)이 주요 수종이다.
차를 타고 올라간 북방리 경영지에서는 임도 개설 작업이 한창이었다. 임도 주변엔 목재를 생산할 수 있는 40년생 낙엽송이 숲을 이뤘다. 북방단지에서는 지난해 2.73㎞에 이어 올해 간선임도 4.5㎞와 작업임도 1.46㎞를 조성 중인데 사업 기간에 30㎞를 조성해 ㏊당 임도 20m를 확보할 계획이다.
최장호 산림조합 경영전문관은 “임도는 말하자면 우리 몸의 혈관으로 산림경영을 위한 필수 기반시설”이라며 “임도 조성이 완료되면 잣 생산을 늘리고 목재 생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홍천단지에선 올해 처음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 조림지 30㏊에서 벌채가 진행될 예정인데 목재값 산정 및 정산 방식을 두고 관심이 쏠린다. 산림 소득을 높이기 위해 잣나무 위탁 수확 및 산양삼·산나물 등 복합경영 계획도 꾀하고 있다.
한국형 사유림 경영 모델 실현에도 여건은 열악하다. 2050년 국내 목재 수요의 30%인 1200만㎥를 국내재로 공급한다는 계획 역시 쉽지 않다. 한국에서 1㏊에 50년간 나무를 심어 목재 생산까지 들어가는 비용은 1273만~1914만원(벌채 비용 제외)이다. 조림비 90%, 숲가꾸기 비용 50%를 지원받더라도 산주의 소득은 300만~400만원에 불과하다. 산림경영계획에 맞춰 영림 행위를 하면 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제 혜택이 있지만 실속은 적다. 돈이 안 되는 ‘산’은 개발이익을 기대하거나 후대에 물려줄 잠재 재산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 임업인은 “조림 후 벌채까지 50년의 투자·경영비 및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양도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등 대를 이어 영위할 수 있는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홍천·순천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2015-08-06 1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