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고서야 알았다… 부메랑이 된 ‘법 기술’[공연 리뷰]

당하고서야 알았다… 부메랑이 된 ‘법 기술’[공연 리뷰]

최여경 기자
최여경 기자
입력 2025-09-10 00:14
수정 2025-09-1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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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리마 파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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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프리마 파시’는 피해자가 되면서 법의 모순을 깨닫게 된 변호사 테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신록이 테사와 동료 변호사, 경찰 등 여러 역할로 열연한다. 쇼노트 제공
1인극 ‘프리마 파시’는 피해자가 되면서 법의 모순을 깨닫게 된 변호사 테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신록이 테사와 동료 변호사, 경찰 등 여러 역할로 열연한다.
쇼노트 제공


의사에 반해 성적 행위가 이뤄졌으니 성폭력이 맞다. 그런데 이전에도 성관계한 사이라면 ‘거부 의사’를 인정받을 수 있나.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던가.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은 적절했나.

연극 ‘프리마 파시’는 중반부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공연장 밖을 나오면서도 질문은 이어진다. 배우는 어떻게 저 많은 대사와 감정을 토해 내면서 연기할 수 있는 것인가.

●성폭력 가해자 변호사에서 피해자로… 비수가 된 법의 모순을 꼬집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상연 중인 1인극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명확하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법률 용어인 프리마 파시(prima facie), ‘그럴듯해 보이는 표면의 증거’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면서 사법 시스템의 모순을 꼬집는다.

자신만만한 형사 전문 변호사 테사에게 재판은 게임이다.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승리를 거머쥔다. 성폭력 사건 재판도 마찬가지. 가해자의 변호인으로서 ‘상대가 성관계를 허락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 증거’를 찾고 ‘피해자가 거짓말쟁이로 보이도록 하는 전략’으로 승소를 이끌었다. 승승장구하며 왕립 변호사가 될 길이 열린 테사는 동료 변호사와의 술자리 후 성폭행을 당하면서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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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극 ‘프리마 파시’는 피해자가 되면서 법의 모순을 깨닫게 된 변호사 테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자람이 테사와 동료 변호사, 경찰 등 여러 역할로 열연한다. 쇼노트 제공
1인극 ‘프리마 파시’는 피해자가 되면서 법의 모순을 깨닫게 된 변호사 테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자람이 테사와 동료 변호사, 경찰 등 여러 역할로 열연한다.
쇼노트 제공


●뒤바뀔 수 있는 가해·피해 논리… ‘여성=피해자’ 씁쓸한 현실의 클리셰

가해자와의 관계, 만취 상태의 기억, 거부 의사의 적극성과 가해자의 인지, 사건 이후 피해자의 행동 등 벌어진 모든 정황에는 자신이 파고들었던 허점이 있다. ‘가해자를 변호했던 자신’이 던진 질문이 ‘피해자가 된 자신’을 위협하고, 갖고 놀았던 법은 자신을 상처 내는 무기가 됐다. 승소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선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하므로 782일에 걸친 법정 싸움을 이어 간다.

‘사건 전의 나’와 ‘사건 후의 나’가 만드는 대칭 구도는 재판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사회의 시선, 뒤바뀔 수 있는 가해와 피해의 논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여성이 피해자’라는 단순한 등식이 아쉽다가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아직은 이게 현실에 가깝다 싶다.

●1인 다역 무대 꽉 채운 김신록·이자람·차지연 ‘연기 차력쇼’

‘프리마 파시’는 호주 인권 변호사 출신 극작가 수지 밀러의 경험에서 태어났다. 오랜 기간 마주친 성폭력, 젠더 불평등, 계급 격차의 현실은 밀러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소재로 그 정점에 ‘프리마 파시’가 있다. 2019년 호주 시드니 그리핀 시어터에서 초연한 뒤 20개 이상 언어로 번역돼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하고 있다.

오는 11월 2일까지 이어지는 한국 공연에서 테사 역은 김신록, 이자람, 차지연이 맡았다. 김신록과 이자람은 테사인 동시에 엄마, 증인, 동료 변호사, 경찰 등 1인 다역을 하면서 2시간 동안 쉴 틈 없이 대사를 뱉어 내고 무대 중앙에 놓인 육중한 책상을 직접 돌려 무대 전환까지 해 낸다. 명확한 발음과 에너지를 유지하며 연기하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발가락을 다쳤던 차지연은 9일 복귀했다.
2025-09-1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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